2019년 5월 18일 토요일

유대인이라고 구약성경을 다 아는 것이 아니다


구약시대에 아담의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것은
그런 것을 아는 것보다 머리로서의 하나님 인식이
더 시급했던 것이니 아담의 범죄 원인을 아는 것이
그 범죄의 결과를 아는 것보다 우선이었기 때문.
메시야(그리스도)께서 오시자 비로소 밝히셨지만
이 역시 하나님의 위엄은 구약 통해 충분히 알려진데다
무엇보다 강조되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어린양"
및 그 구속이었고 여기에 주력을 기울이다보니
아담이 영생하는 자로서 출발했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부차적 의미에 속해 사람들의 관심도가 낮았던 것.

지금은 당시와는 달리 구약시대의 엄위(롬 11:22)는
완전히 망각할 정도가 되어 "인자"만이 강조되는
균형을 잃은 경도됨이 위험 수위를 넘어선 것이다.
회개를 무시하고 범죄에 대해 두려워함이 없어지고 
세상 사랑이 분별 없이 자행되는 지경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아담의 범죄 결말이 무엇이었던가를 
반드시 제대로 다시 밝혀져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 것.

뿐아니라 오늘날 소위 "외계인"으로 기만하는 악령들의
행패로 인해 사탄을 비롯한 그들의 본디 정체를 
정확히 파악함이 시급해져 이 사실을 강조하는 것.
이 21세기에는 필수불가결한 지식의 기본이어야. 
이상과 같은 성경 이해의 파행(跛行)이 지속된 것은
사탄이 자기 정체가 속속들이 알려지면 유리한 것은
하나도 없기에 집요하게 감추기에 혈안이 되었기 때문.

기독교 교회사는 악명 높은 이단 집단인 천주교를
"기독교"로서 인정하여 마틴 루터를 (종교)"개혁"이라
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 정통적 정상 믿음의
교회 활동은 워낙 소수로서 미미하기도 하지만
당시 "이단"으로 취급되어 언급조차도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왈도파(Waldenses)만 잠깐 지적할 뿐이다.
그들에 대한 핍박이 도를 넘어 야만적이었기 때문.
고로 대세를 장악하고 있던 로마 카톨릭인지라
사탄의 조종을 따라 아담 관계 사항은 의식적으로도
배제했을 가능성도 없잖아 있는 것이다. 







악한 세상에서 의인의 고난받음은 지극히 정상이다 끝까지 인내하고 임무에 충실해야

악마에게 휘둘려 온 인류 역사도 이제 그 극치에 이르고
그 다음부터는 정상적인 아담의 시대가 도래한다









2019년 5월 16일 목요일

이 세상은 네피림(악령들)이 틀어쥐고 있는 세상

영원한 생사를 가름하는 양단간의 결정
왜냐면 아무도 범접 못할 초능력으로 
악마가 위장하여 등장하는 마지막 때이므로
따라서 계시록 세 천사의 메시지 그대로(계 14:6-9)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이다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의 마지막 심판은 아니고
현존하는 인간(76억)의 심판
적그리스도 편에 선 모든 인생들에 대한 
대칭 아담의 단호한 척결, 통치 행위이다
이 76억 인구 중에는 모르기는 하지만
네피림이 과반수 또 그 이상을 차지하지 않을까

네피림은 악령들의 분신에 불과해(사람이라기보다)
구원도 안되고 오직 인생들(아담의 후대)의 구원에 대한
방해 세력으로서만 작용해 왔던 것으로서
아담의 범죄와 죽음으로 인한 후유증의 하나인즉
(악령 리워야단의 이 세상 장악으로 인한)
그들에 대한 표현은 "쓰레기 잡종 청소"란 말이 알맞으나
현재로는 누가 네피림인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처지는 되지 않으나
반드시 참고할 필요가 있는 중대 사실이다
이 세상의 마귀 속성은 하나의 상식이니까

















혹자는 말할 것이다.
나의 행함 여부와는 일절 관계 없이
오직 나를 그 죽으심으로써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믿기만 하면 영원 불변의 구원이 보장된다고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안심이 되었었다고.
그래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부인하리라" 하시니
불안하다는 것인가ㅡ한 마디로, 그것은 잘못 배운 것.
아담을 자연계 존재, 에덴을 자연계 동산으로 착각하던
이들이 메시야의 죽으심도 "대신 죽으심"으로 착각
자기도 잘못 알고 남들도 잘못 가르친 것이다.

사랑 없음을 스스로 한탄하라, 다른 이유 없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롬 13:8)고 한
바로 그대로다ㅡ사랑은 그 상대의 뜻을 내 뜻처럼 여겨
행하는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나 위해 자기의 모든 것 바쳐 그 모진 고통 다 당하신
분을 사랑하는 것이 그리도 힘든 일인가.
그것도 자기 자신을 위해 내게 요구하심이 아니라
결과론적으로 바로 나 자신을 위해 내리시는 분부시다.

머리와 몸 관계로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것이
그리도 힘들고 불안스러운가ㅡ믿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라(갈 5:6) 
사랑 없으면 믿음도 당연히 없다. 
사랑 유무로써 자기 믿음 유무를 진단할 수 있다.
믿음에 있는가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라 했다(고후 13:5).
스스로 알 수 있기 때문에 시험, 확증하라 한 것이다.
어떻게 아느냐, 바로 고후 5:15과 롬 14:7-9이다.
아무도 "우리 중에 없다"는 단정은 누구나 알 수 있다는 뜻.

하나님의 명령대로 회개(행 17:30) 않으면 믿음도 불가능.
무엇을 회개(행 2:38)하느냐, 머리되신 하나님 뜻을
몰라뵙고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았으니 회개다. 
몸은 머리 위하고 머리는 몸 위하는 '위함'이 사랑이다.
몸의 구조상 서로가 서로를 위하지 자기 위함이 없다. 
이것이 생명의 법칙이다. 이 법을 어기미 죄다(요일 3:4).
이런 것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자신이 없어 하면
차라리 삶 자체를 포기한다고 말해야 옳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딤후 3:15)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딤후 3:15)






교역자가 신학적 무지무식에서 탈피하는 유일한 길은 성경을 집중 공부하는 것이다

교역자가 신학적 무지무식에서 탈피하는 
유일한 길은 성경을 집중 공부하는 것이다











곰(bear)이 사람과 같은가
자연계 생물은 신진대사하는 식으로 해서
창조 당시의 곰이 지금의 곰이다
사람은 영혼이 있어 죽지 않아야 
지금까지 남아 있게 된다
사람이 낳고 죽고 낳고 죽는 것은
곰이 낳고 죽고 하는 것을 되풀이함과
전혀 같지 않다 곰이 영혼을 가졌는가
영혼이 있는 인간이 자연계 동물처럼
낳고 죽음을 되풀이하는 것은 
굉장히 이상한 일인 줄 모른다면
당신은 아직도 영적으로 덜 깨인 사람 아닌가
영혼도 하나님도 부정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하나님도 영혼도 인정하면서도
똑같게 여기고 괴이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이 세상 신 사탄에게 잔뜩 홀려 있다는 증좌다




2019년 5월 7일 화요일

세례에 임하기 전 반드시 거쳐할 3단계

세례에 임하기 전 반드시 거쳐할 3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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